2025년 2월 7일 금요일
내성고 졸업식 시간에 맞추느라 아침 일찍 일어났어요.
저는 알람 어플을 안 쓰는데도, 이런 이벤트 있는 날에는 눈이 떠지더라고요!
일어나서 빠르게 미역국 먹고, 씻고, 졸업식 보러 갔어요.
맑고 화창한 날씨에 버스 안에도 사람이 적어서 여유롭였어요.
오늘은 제가 졸업한 지 정확히 10년 되는 날이에요.
작년에 자주 왔었기에 어색하진 않았지만, 뭔가 오늘은 더 특별한 느낌이었어요.
정문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도, 길이 이렇게 짧았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어요.
그동안 학교도, 저도 많이 바뀌었겠죠.
학교 인조잔디는 모래 바람 안 날리는 흙 운동장으로 바뀌었어요.
스탠드와 1층에는 지붕이 생겼고, 농구 코트는 파란색으로 칠해졌어요.
학교 입구는 코지한 분위기의 의자와 테이블이 생겼고, 중앙 현관에는 꽃 장식까지 달려있어요.
학교 본관은 그대로지만, 특별실들은 홈그라운드, 다목적실, 등등 전부 리모델링됐고요.
이미 1, 2학년들은 하교했기에 고요했어요.
강당 앞 입구에만 가족들이 모여있어서 다른 곳들은 완전 한산했거든요.
그리고 오늘이 종업식 날이기도 해서 모든 교실 문도 열려있었어요.
적당한 2학년 교실 들어가 앉아서 혼자 생각했어요.
짝지도 없는 다섯 줄 배열에 화이트 보드, 전부 바뀐 사물함, 무선청소기에 태블릿 보관함.
여기에 혼자 앉아있는 건 완전 쓸쓸할 거 같아요.
제가 칠판에 그리면서 풀었던 문제들, 지리 보단 다른 과목이 더 기억에 남아요.
제가 들어가면서 보던 학생들 보다는, 들어오는 선생님을 보던 기억이 훨씬 선명해요.
그래, 뭔가 여기까지 왔으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제 마음은 그대로였어요.
다시 강당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을 제치고 앞쪽으로 갔어요.
상당히 지겨운 교장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졸업하는 학생들을 살펴봤어요.
'전 10년 전에 어떤 모습이었더라??'
중간에 다시 복도로 나와서 걷다 보니 창밖이 뿌옇게 변했어요.
그러더니 2018년 1월 이후로 처음 보는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어요.
교실 창가 옆 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보는데, 학교에서 처음으로 운동장이 하얗게 변한 걸 봤어요.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 날에 첫눈이라니, 뭔가 특별한 느낌도 들었어요.
졸업식이 끝날 때 즈음에 먼저 중앙 현관으로 나가서 눈을 맞았어요.
눈 맞는 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는데, 정면으로 맞기엔 눈 뜨기도 어렵더라고요.
추운 날씨였지만 맑은 공기에 차가운 눈을 맞으니 뭔가 활기가 느껴졌어요.
눈바람 속에서 걷고 있으니, 학생들도 달려 나오며 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제가 처음 보는 학교 모습에, 뛰어다니는 학생들, 내리는 눈,
많이 비슷하지만, 제가 보던 꿈속의 학교가 아니었어요.
저도 10년 전에는...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면서 그 난간 앞에 멈췄어요.
언젠가 여기가 그리워질 것 같다는,
저희 여덞 명이 자주 모여 있던 장소였거든요.
새로 설치한 지붕 때문에 미묘하게 시야가 방해되더라고요.
'언젠가 돌아오기로 했었잖아'
'근데 결국 돌아온 건 나 밖에 없네'
'그치만 여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
'언젠가 다시 돌아오더라도, 우리가 보는 하늘은 가려져 있을 거야'
웃고, 떠들도, 사진 찍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저는 졸업식 때 어땠었더라??
가장 친한 친구들이랑 사진만 찍고,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이랑 점심 먹었던 것 같아요.
더 이상 그날, 그 학교에서는 제가 원하는 모습이 없었기 때문에 속상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봄에, 저는 문득 겁이 났어요.
언젠가 이 날이 굉장히 완전, 완전 그리워질 걸 알았거든요.
어김없이 바로 다음 해부터 굉장히 우울했어요.
그래서 전 고3 때 반 애들이랑은 하나도 교류가 없었어요.
대학생일 땐 착한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많았어요. (한 명 빼고)
근데 아무한테도 관심이 없었어요.
공익이랑 쉐어하우스 때는 완전 재밌었어요!
근데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노는 게 훨씬 재밌었어요.
2018년에는 밀어냈어요.
그러면 나아지거나 계기라도 생길 줄 알았어요.
근데 혼자가 되니 자유로웠지만 쓸쓸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와의 마지막 말을 지키기 위해서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블로그는 재밌었지만, 그 마지막 말에 집착해서 너무 몰입하는 거 같았어요.
2020년 교생 실습 때는, 묘한 이질감이 들었어요.
전 아직 학생인 것 같은데, 교사로 앞에 서있으려니 힘들었어요.
문제 풀러 나온 학생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달랐네요.
그 뒤로 멘토링과 방과 후와 수업할 때도, 다음엔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제 실제 모습과 머릿속의 모습에 괴리감이 심했어요.
최근 2년간 새로운 계획을 많이 짰지만, 실제로 이룬 건 별로 없었어요.
왜냐하면 아직도 학교에서 나가긴 싫었거든요.
일주일에 3-4일은 꿈을 꿔요.
제가 실제로 겪은 일은 아니지만, 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새로운 하루.
학교 책상에서 잠을 깨서 수업 듣고, 친구들이랑 놀고, 청소도 하고, 교문을 나가면,
다시 익숙한 천장 아래에서 일어나요.
불 꺼진 교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그 빛에 떠다니는 먼지들
책들로 채워진 서랍과, 책상 위 올려진 필통과 교과서들, 걸려있는 교복들
고요하지만 포근하고, 조금 어둡지만 적당한, 분필 가루만 날리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언젠가 네가 들어와서 물어보겠지, 그리고 날 끌고 나가줬으면 좋겠어.
차가운 눈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고, 지붕 때문에 제가 알던 풍경이 아니고,
에너지 넘치게 웃는 모습이 가득한 학교는 더 이상 제가 있을 곳이 아니었어요.
이번 2학기도 실패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도 그날 웃으면서 놀았어야 했나 봐요.
졸업하는데 10년이나 더 걸리다니!
이걸로 이제 선생님은 끝이에요.
애초에 사범대를 골랐던 이유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학교 다닌 것도 전부 답을 찾고 싶었을 뿐이거든요.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어요.
그때는 정말 1년 통째로, 선생님인 모습으로 즐기고 싶네요!
하지만! 오늘 본 애들이랑 같은 길을 가겠다는 건 아니에요.
새내기에 군대에 친구들이랑 놀고, 연애하고, 공부하고,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거든요!
제 지금 모습의 적어도 절반을 만들어준 그 친구 덕분에, 다시는 평범하게 못 살죠.
전 졸업을 했을 뿐이지 다른 부분들이 바뀐 건 아니라고요.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이랑 사진 찍고, 웃으면서 얘기하고,
그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갈림길에서
"다음에 또 보자"라고 말하고 자기 길로 가는 모습들이 용기 있더라고요.
다들 부러워요. 저도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 놀랍게도 이 내용은 양극성장애랑은 크게 상관이 없답니다.
오로지 추억과, 거기에 얽매여 있는 제 이야기일 뿐이에요.
언젠가 제 어렸을 때 얘기부터 서서히 망가지다 다시 접합된 과거,
그리고 완전히 어지러워진 얘기도 적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오늘의 한 끼: 팟 타이